한국전통주

세종대왕 초정약수 K-리큐르 전통주 어주 이도

모리의정보 2025. 4. 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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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초정약수 K-리큐르 전통주 어주 이도

바야흐로 K-컬처가 전 세계를 휩쓰는 '한류 4.0' 시대입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에 따르면 전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 2천 5백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영향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주, 즉 'K-리큐르' 역시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역사적 인물과 스토리를 담은 전통주는 그 가치를 더하는데요. 오늘은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초정약수, 그리고 이들을 모티브로 탄생한 프리미엄 전통주 '세종대왕 어주'와 '이도'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계적 명성, 초정약수와 세종대왕의 만남

충청북도 청주시 내수읍 초정리에 위치한 초정약수는 단순한 약수가 아닙니다. 그 명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3대 광천수의 위엄

초정약수는 미국의 샤스타(Shasta), 영국의 나폴리나스(Napolinas) 광천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광천수로 손꼽힙니다. 이는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그 성분과 효능 면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증거입니다. 톡 쏘는 탄산과 풍부한 미네랄을 함유한 초정약수의 특별함은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안질 치료를 위한 행차, 그 역사적 기록

 

세종대왕 초정약수 K-리큐르 전통주 어주 이도

초정약수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일화는 바로 세종대왕과의 만남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는 1444년, 세종대왕이 지병이었던 안질(눈병)과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왕비, 세자 등 왕실 가족과 함께 초정리를 찾았다는 기록이 명확히 남아 있습니다.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무려 121일간 이곳에 머물며 요양했다고 하니, 그 효과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후 세종의 아들인 세조 역시 왕위에 오른 후 초정을 다시 찾았다는 사실은 초정약수의 효능에 대한 왕실의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훈민정음 창제와 초정약수의 숨겨진 인연?!

흥미로운 점은 세종대왕이 안질로 고생하면서도 초정 행궁에 머무는 동안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서류들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444년 초정 행궁에 머물렀고, 1446년에 훈민정음이 반포되었으니, 어쩌면 초정약수의 맑은 기운과 이곳에서의 안정이 훈민정음 반포라는 위대한 업적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물론 초정행궁 자체는 1448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해 2020년 인근 부지에 재현되어 개장했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여전히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술에 대한 세종의 철학: 소통과 애민

세종대왕은 과연 술을 즐겨 마셨을까요? 실록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술에 대한 그의 명확한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외교와 예를 위한 도구로서의 술

태종이 세자 교체를 고심하던 시기, 태종은 충녕대군(훗날 세종)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좋다고는 할 수 없으나, 중국 사신을 맞이할 때 주인으로서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다면 어찌 손님에게 권하고 즐겁게 할 수 있겠는가?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하나 적당히 마시고 그칠 줄 안다." (『태종실록』 18년 6월 13일) 이는 세종이 술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외교나 의례 등 공적인 자리에서 필요한 소통의 도구로 인식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술을 절제할 줄 아는 미덕을 지녔던 것입니다.

약주 권유도 거절한 강직함

세종은 실제로 술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왕위에 오른 후에도 약용으로 아주 가볍게 마시거나, 그마저도 사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종 4년, 독감에 걸려 고생할 때 신하들이 혈액순환에 좋다며 소주를 권했지만, "술은 내 체질이 아니다"라며 거절했고, 거듭된 간청에 마지못해 반 잔만 마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에게 술은 개인적인 기호품이 아닌, 공적인 역할 수행의 일부였던 셈입니다.

백성을 향한 따뜻한 마음, 하사하신 술과 고기

하지만 흥미롭게도, 술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세종이지만 초정 행궁에 머물던 시기에는 주변 백성들에게 술과 고기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세종실록』 26년 3월 기록을 보면, 행차로 인해 고생하는 청주 백성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여러 차례 술과 음식을 베풀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술을 대하는 개인적인 태도와는 별개로, 백성을 아끼고 위하는 세종의 따뜻한 애민정신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일화라 할 수 있습니다.

세종의 유산을 담은 K-리큐르: 어주와 이도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의 깊은 인연은 오늘날, 특별한 K-리큐르를 탄생시키는 영감이 되었습니다. 청주 지역의 양조장들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세종대왕을 기리는 명품 전통주를 빚어내고 있습니다.

'산가요록' 속 비법을 재현한 '세종대왕 어주'

장의도가(대표 장정수)는 조선 전기의 의관이자 세종부터 세조까지 네 임금을 모신 전순의가 저술한 『산가요록』에 기록된 '벽향주(碧香酒)'의 주방문(酒方文, 술 빚는 법)을 토대로 '세종대왕 어주' 탁주와 약주를 성공적으로 재현했습니다. 직접 디딘 전통 누룩에 찹쌀과 멥쌀을 8:2 황금비율로 배합하고, 바로 그 초정약수를 사용하여 삼양주(三釀酒, 세 번 덧술하는 방식)로 정성껏 빚어냅니다. 이후 90일간의 발효 및 숙성 과정을 거쳐 깊고 부드러운 풍미를 자랑하는 술이 완성됩니다.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세종대왕 어주 약주'는 2019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최고 영예인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세종의 이름과 철학을 담은 증류주 '이도'

조은술 세종(대표 경기호)에서 만드는 프리미엄 증류주 '이도(怡稻)'는 그 이름부터 세종대왕의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양조장 이름 '조은술 세종'과 제품명 '이도' 모두 세종대왕의 이름(휘: 이도/李祹)에서 따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반적인 술과는 다른 길(異道)을 걷는다는 의미도 내포하는데, 이는 국내 최초로 유기농 쌀 100%와 직접 만든 누룩, 그리고 초정약수만을 사용하여 술을 빚는 차별화된 철학 때문입니다. 현재 '이도'는 22도, 25도, 32도, 42도의 네 가지 도수로 생산되고 있으며, 각 도수에는 세종대왕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이도 22 :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나이 22세 * 이도 25 : 한글을 반포한 세종 25년 (1443년 창제 완료, 1446년 반포) * 이도 32 : 세종대왕의 총 재위 기간 32년 * 이도 42 : 세종대왕이 주요 업적을 이룬 시기인 42세 전후

특히 '이도 42'는 그 품질과 스토리를 인정받아 2024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증류주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그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초정약수, 전통주를 만나 세계로

이처럼 '세종대왕 어주'와 '이도'는 단순한 술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명수(名水) 초정약수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칭송받는 세종대왕의 이야기가 만나 탄생한 K-리큐르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최고급 원료와 전통 방식, 그리고 현대적인 양조 기술이 결합되어 한국 술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맺음말

세종대왕은 술을 약으로 삼기보다는 백성을 위한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애민 군주였습니다. 비록 와병 중 약주를 즐기지는 않으셨지만, 그가 머물렀던 초정약수는 오늘날 그의 이름과 정신을 담은 최고급 전통주를 빚는 귀한 재료가 되었습니다. 세종대왕 어주와 이도는 단순한 술을 넘어,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담아 세계와 소통하는 K-리큐르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주를 통해 세종대왕의 위업과 초정약수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